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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힘들지만 가야할 길

  • 이승환
  • 조회 : 9562
  • 등록일 : 200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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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오전, 인천시의회 농성장 앞에서 인천연대 및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천막철야농성 25일째를 맞아 의정비 인상 규탄집회를 가졌다. 규탄집회 후, 올해 마지막 회기를 진행하고 있는 인천시의회 방청을 위해 들어가려는 시민단체들과&nbsp; 이를 저지하려는 시의원들 간에 신경전이 이어졌다. 결국 감정이 격해지며 격렬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전경들이 투입되고 시민단체 회원들은 밀리기 시작했다. 순간 회원들 쪽에서 연분홍색의 액체가 담긴 페트병이 허공을 갈랐다. 뚜껑은 없었다. 진한 비린내가 의회 출입구 쪽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까나리 액젓이 발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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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인천시의회 진입을 위해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단체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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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까나리 액젓을 뿌리겠다고 다짐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시위 뒤쪽의 회원들이 던진 겁니다. 그렇다고 그게 물총처럼 좌~악 뻗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막상 의원들은&nbsp; 안 맞고 대치중이던 전경들이나 사진기사들 그리고 시위 선두에 있던 저와 회원들이 온통 뒤집어썼죠. 애먼 사람들만 곤욕을 치렀답니다."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지역 공동체 시민단체인 인천연대의 장금석 사무처장은 작년 까나리 액젓 투여 사건을 얘기하며 멋쩍은 미소를 지웠다.


사진2 단체이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장금석 사무처장
시민문화센터로 시작

인천연대는 1996년 "시민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 이후 1998년 현재의 인천연대로 개칭됐다. 창립 때부터 단체이름 앞에 붙던 "평화와 참여로 가는"이라는 문구는 13년째 지속되고 있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서울에 들어가기 전 머무르는 도시 정도의 성격이 강하고, 어떤 특색을 찾아보기 힘들죠. 그러므로 더욱 인천의 지역 정체성이 중요했습니다. 지역민들에게 정주(停住)의식과 살고 싶은 도시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고요. 그래서 인천만의 문화를 찾기 시작했고 지역 문화에 집중하며 활동이 시작된 겁니다." "시민문화센터"라는 초기 단체이름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금석 사무처장은 이후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로 단체이름을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과 참여 민주주의 실현, 아름다운 지역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지금껏 달려 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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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정체성 세우기
한때 인천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의 이전문제가 전국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인천연대는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유명한 여중생 미군 장갑차 치사사건과 관련, 미군무죄평결을 규탄하며 맥아더 동상 철거를 처음으로 촉구했다. 인천연대는 "인천을 대표하는 공원에
사진3 개항 100주년 기념탐 철거 포퍼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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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군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시민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며 인천상륙작전기념관으로의 이전을 촉구했던 것이다. "그때 한창 반미감정이 거센 시기였기에 저희의 주장이 큰 호응을 얻었죠. 그리고 2001년 도에는 "인천항 개항 1백주년 기념 탑’에 대해 인천시 등이 이전을 추진하자 저희가 아예 철거해야 한다며 맞섰습니다. 그리고 결국 철거 시켰죠." 장 사무처장은 "이와 같은 활동들이 인천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며 나아가 기념탑의 철거를 관철시킨 일은 인천지역에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과 북은 한민족, 평화통일을 향하여

사진4 평양유적지 답사와 아리랑 축전 관람한 인천 지역민들

인천연대에는 북한 평양시에서 주는 상을 수상한 사람도 있단다. 전 사무처장인 박길상 감사이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에서 남북교류협력 차원에서 북한을 오갔는데 박길상 감사도 거기에 함께했던 거죠. 이후 인천시의 요청으로 인천시와 북한을 연결시켰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상을 수상했던 겁니다. 그 후 이 때문에 많은 곤욕을 치렀지만요." 또한 장 사무처장은 지역민들과 북한의 아리랑 공연도 함께 봤다고 한다. "저희 단체뿐만이 아니라 인천지역에서 단체로 조직해서 수백 명이 관람했습니다." 인천연대는 단순히 지역 시민단체를 넘어서 분단국가라는 우리 현실에 있어서 진정한 통일의 의미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 정권에서 말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상호주의는 애당초 전제 자체가 틀린 겁니다. 남북관계는 민족의 문제이며 통일의 문제입니다. 북이 어려워서 굶주리고 있는데 상호주의라는 건 "이거주면 뭐줄래?"라는 건 데, 이는 근본적으로 통일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의 핏줄인 민족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아니죠." 현 정권이 북을 대하는 방식에 안타까워하는 장 사무처장의 얼굴에서 험난하지만 꼭 가야만하는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이 읽혀졌다.


진정한 참여를 위한 희망동 사업
요즘 "시민 없는 시민운동"라는 시민단체들에 대한 비판이 있다. 장 사무처장 역시 이에 동의하며 말한다. "시민 있는 시민운동이 돼야죠. 지역 사람들의 곁에 다가가야 합니다. 지역민들이 와 주기만을 기다리면 안 되죠.&nbsp; 그들의 생활과 삶의 현장에서 크고 작은 얘기들을 함께 나눠야 합니다. 저희가 현재 노력중인 "희망동 사업"이 바로 이겁니다. 지역의 작은 동네에서 일상적인 현안을 갖고 지역민들과 만나 공동 실천하고 성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죠." 지역에서 활동한다고 모두 풀뿌리 운동이 아니라는 장 사무처장은 진정한 풀뿌리 운동으로 희망동 사업을 실험중이라고 한다.&nbsp;
희망이 있기에
386세대의 끝자락인 88학번이라는 장 사무처장은 지금의 생활이 힘들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인천연대에 저와 같은 상근자들은 한 달에 60~70만원의 보수를 받고 있죠. 현실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된 시민운동은 이제 민중운동진영과 시민진영운동과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저의 바람이 있고요. 또한 이를 위해 과거 문익환 목사님과 같은 시민운동계의 큰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이 두 가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한, 저는 계속 이 자리에 있을 겁니다." 자신은 시민운동권의 1.5세대라고 말하는 장 사무처의 얼굴에서, 요즘 촛불시위의 젊은이들 못지않은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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