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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3단 변신해봐야 정신차리겠어? 디스트릭트9 속 경계인 VS 우리 안의 경계인
- 손경호
- 조회 : 9669
- 등록일 : 2009-12-04
어렸을 땐 지구를 지키는 용사가 되겠다며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변신을 외쳤다. 비디오테이프로 두 세 개씩 빌려 보던 ‘후레쉬맨’의 주제가는 아직도 흥얼거릴 만큼 낯설지 않다. 극중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프리즘 플래시”를 외치며 헬멧을 쓰고 원색 복장으로 갈아입는 후레쉬맨들의 변신이다. 다음으로는 우주생물과 지구생물의 유전자를 조합해 극중 괴물인 ‘수전사’가 탄생하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기억엔 유전자 신디사이저를 통해 여러 가지 생물체가 합쳐져 흉측한 괴물로 변신하는 과정이 불쾌하게 느껴졌었다. 너무 다르다는 이질감 때문이었다. 반면 수전사들은 그저 없애 버려야하는 ‘악의 무리’로 손쉽게 각인됐다.
▲외계물질에 노출된 후 1단 변신한 비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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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변신을 꿈꾼다. 더 강한 육체를 갖기 위해, 더 매력적인 외형을 갖기 위해 누구나 더 나은 무언가를 갈망한다. 초콜릿 복근을 만들려고 운동삼매경에 빠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형수술을 위해 몇 년째 적금을 든 이들도 흔하다.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차이점을 만들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변신을 꿈꾸는 이들이 다른 이들의 변신엔 무감각하거나 달갑지 않아 하는 듯하다. 더군다나 초콜릿 복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예쁜 얼굴도 아닌 새우를 닮은 외계인으로 변해간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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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스트릭트9>에는 공격성을 보이지도 않고 고양이밥과 날고기만을 탐내는 외계인들이 등장한다. 침략자라기보다는 ‘단순무식한’ 혹은 ‘온순한’ 이방인의 이미지에 가깝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 그들을 ‘프런’이라 부르며 비하하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를 상징한다. 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려는 민간군수업체 MNU의 총책임자 비커스는 외계물질에 노출돼 오른팔부터 점점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는 내부인에서 경계인으로 다시 이방인으로의 3단 변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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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변신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비커스의 변신은 처절하기만 하다. MNU는 외계인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됐다는 이유로 몇 시간 전만해도 동료였던 그를 실험용 쥐처럼 취급한다. 그가 영화 도입부에서 프런들의 부화장을 발견하고 영양공급장치와 산소공급장치를 빼버리고 알을 불태워버리는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전혀 반대의 입장이 된 것이다. 내부인에서 경계인으로의 변신은 차별하고 억압하는 가해자에서 피해자로의 급격한 전환을 보여준다.
▲로봇에 탑승한 비커스. 2단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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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외계인으로의 변신을 모티브로 잡았지만 일상의 곳곳에도 이방인들에 대한 차별 과 억압은 요란하다. 우리나라 중 ‧ 고등학교에는 왕따, 찐따, 은따가 있고, 대학이 받아들이길 꺼리는 장애인들이 있다. 군대에서는 계집애 같다며 놀림 받는 사병들이 있고, 마녀 사냥하듯 주홍글씨를 새겨버리는 성적소수자들이 있다. 내부인들은 쉽게 구분 짓고, 쉽게 비난하는데 익숙해 보인다.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잃어버린 채로 말이다. 경계인으로 변신한 비커스는 내부인으로서 존엄성을 잃고 가족, 동료, 다른 내부인들과 맺었던 유대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그저 외계인DNA에 반응하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실험대상으로서 이용가치만 가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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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각 개체 간 거리가 가까울수록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은 모르는 것에 대한 접촉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군중 안에 밀집할수록 접촉에 대한 공포가 다른 이들에게 전도되어 안정감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밀집한 군중 밖에 있는 이들은 타자화 되어 군중이 공격하기 좋은 대상이 된다. 군중 속에 있는 동안에는 죄책감도 희석되어 더 대담한 공격성을 보인다. 군중으로서 내부인들은 경계인과 이방인들을 물리쳐야 할 ‘악의 무리’로 여기는 듯하다. 내부인과 왕따, 장애인, 놀림 받는 사병의 관계는 다수 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가하는 데 거침없다.
▲3단 변신한 비커스
비커스는 경계인이 되고 나서야 군중의 폭력을 두려워하고 이방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가 다른 외계인을 구하기 위해 로봇에 탑승해 벌이는 전투씬은 액션의 화려함에 더해 특별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내부인과 경계인 ‧ 이방인의 상하관계가 잠시나마 역전돼서 통쾌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관계의 역전은커녕 개선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 볼 것도 없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경계인 ‧ 이방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공격의 대상이 된다. 현실에서도 경계인이 돼보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줄 수 없는 것일까? 김건모의 노래가사가 생각난다. “내게 그런 핑계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