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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팔도에 고하노라 -제천 의병전시관을 가다

  • 이보라
  • 조회 : 10058
  • 등록일 : 200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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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에 고하노라!”

-충절의 고장, 제천 의병전시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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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어느 의병의 외침. 『조선의 비극』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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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다룬 창작뮤지컬 ‘영웅’이 만들어졌고, 그의 얼굴과 손을 재현한 대형 그림이 광화문에 걸리기도 하는 등 각계에서 그를 조명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을미의병의 선봉자였던 의암 유인석 선생이 안중근 의사를 이끌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충청북도 제천은 을미의병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를 기념해서 제천시는 매년 ‘제천의병제’를 열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플루때문에 행사가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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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을미의병이 일어난 곳, 의병의 고장 제천 봉양읍에 위치한 의병전시관을 찾았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안개 낀 나지막한 산들이 연꽃잎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전시관 입구에는 의병들의 모습이 담긴 큰 부조가 서 있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사의 맥켄지기자가 제천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든 것이다. 민간인들이 총을 들고 서 있다. 표정이 자못 비장하다. 의병들 모습 위로는 ‘義(의)’가 새겨져 있다. 유인석 선생의 친필글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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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의병전시관의 동선을 따라 제천의병의 출범부터 독립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의병장실에 들어서자 낡은 총이 눈에 띄었다. 1896년 3월 남산전투에서 대패한 원인 중의 하나인 ‘화승총’이다. 신식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달리 의병들은 직접 불을 붙여 쓰는 화승총을 사용했는데 불행히도 전투 당일 비가 내렸다. 빗속에서 무용지물이 된 화승총. 이렇다할 무기도 없이 일본군과 싸워야했던 의병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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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o:p></o:p>

의병전시관은 의병 정신의 본류가 된 화서학파 성재 유중석 선생의 고택과 의병들의 지도자였던 유인석 선생의 고택 옆에 자리했다. 제천시가지에서도 외곽으로 30분은 족히 걸린다. 안 해설사는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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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가...한 역사교수님께서 산길을 헤맨 탓에 폐관시간이 넘어 도착하셨어요. 힘들게 찾아오셔서 전시관을 열어드렸지요. 한참을 둘러보시더니, 좀 멀긴 하지만 의병전시관이 의병이 직접 일어난 현장에 있다는 것이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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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전시관은 2001년 제천의병의 창의지인 자양영당 옆에 건립되었다. 이 전시관은 제천의병과 관련한 유물을 후손들로부터 기증 받아 전시하고 있다. 유물은 화서학파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지방문화재 화동강목판본를 비롯해 의병관련 고서, 유중교, 유인석 선생의 유품 등으로 76종 251점이다. 개관한 이후로 연간 1만 4000명 정도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광복회, 전우회 등 단체관람객 위주다. 안 해설사는 “제천시가 독립운동의 모태가 되었던 을미의병의 창의지라는 큰 의미를 가진 도시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일반인이 모여 의병의 의미를 되새기고 알리려던 작은 움직임이 지금의 제천의병제로 발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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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제천시는 의병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시민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1995년부터 매년 의병제를 열고 있다. 작년에는 7000여명이 다녀갔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플루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최소되고 제례중의 하나인 고유제만 열렸다. 제천시 축제추진위원회 장현준(38)사무국장은 “의병제 중에서도 거리 의병극을 열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뮤지컬 형식의 거리의병극은 감동적이고 교육적인 내용이어서 주로 가족단위의 시민들이 많이 찾는 제천의병제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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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사무국장은 “의병제의 활성화를 위해 거리의병극 외에 더 참신하고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만 의병제 프로그램 개발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해설사는 “의병제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의병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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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병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던 화서학파가 자리했던 곳이 지금의 의병전시관이 되었다. 전시관의 한 관계자는 “의병제가 있으면 그나마 관람객이 늘지만 올해는 행사 취소로 관람객도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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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설사는 말했다.

“의병제 행사를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서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의병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 의병정신을 제대로 공부하고 아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교육이 필요하죠.”

&nbsp; <o:p></o:p>

제천시가 당면한 과제는&nbsp;대중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의병제를 만드는 것이다.&nbsp;&nbsp;의병전시관과 제천시 곳곳의 의병유적지를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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