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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천명은 어디에 있는가 - 선덕여왕
- 유라
- 조회 : 9674
- 등록일 : 2009-11-19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10일 미실이 죽었다.
사극에서 주인공의 고난과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현명하고 위대한 선조, 그것을 훼방하는 악의 축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극단적으로 가다보면 사실 현명하고 위대한 선조가 알고 보면 무능한 사람이 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이산’의 영조든 ‘바람의 화원’의 영조든 실제의 영조든 66세의 나이로 15세의 정비와 혼인을 하는 것은 25살의 장성하고 정치적으로 완성된 세손에게 어떤 의미였던가. 자신의 정통성이 콤플렉스였던 영조를 이해할 수는 있다. 이후 정순왕후로 대변되는 조선의 ‘막장’은 영조로부터 시작된다.
드라마 ‘미실’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의 모든 원흉은 그 ‘위대한’ 진흥대제로부터 시작된다. 진흥왕은 멀쩡한 후계자를 두고 미실에게 후계자 교육을 한다. 거기다 이미 미실이 역심을 품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알면 뭐하는가. 거기 출연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사람처럼 진정 현명하고 정치력이 좋은 왕이라면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
시청자들은 미실은 사랑했다. 진흥왕, 진평왕, 천명과 덕만으로 이어지는 천명, 하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하여 이루고 신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욕망을 이루겠다는 여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실은 왜 황후의 자리와 왕, 본질적으로 성골의 자리에 집착했을까. 미실이 비담에게 “왜 그 종이를 덕만에게 주지 않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비담은 답했다. 미실은 나라를 위해서 노력 했으나 진흥대제는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그 노력들과 미실의 존재 자체를 죽임으로서 부정하려고 했다고. 미실이 그렇게 황후와 왕에 집착한 이유는 진흥대제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고 부정당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해서든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더 집착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문제는 ‘선덕여왕’에서 각본에 있다. 캐릭터의 일관성은 애초에 사라졌다.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캐릭터는 지금까지 한국 사극에서 보여준 적이 없을 만큼 독특하고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사극에서 악역은 장희빈이나 해신의 자미부인 정도밖에 없었던 한국에서는 한 획을 그을 만한 인물인 미실이 있다. 만화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매력적인 버려진 왕자, 스승을 죽이는 제자, 사이코패스, 깨방정 떠는 인간이 비담이라는 한 인물 안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춘추는 어떤가. 부모를 다 잃고 독기로 가득한 어린 소년의 얼굴을 무열왕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천명이 죽고 수나라에서 버림받다시피 커온 공자가 긴 머리에 하늘거리는 비단옷을 입고 나와서 화사하게 웃으며 한다는 말이 죽여야 할 것이다, 가지러 왔다 이런 거라니 신선하지 않은가. 그러나 선악이 공존하는 남자와 선악을 초월한 소년은 드라마에서 대사도 변변히 못하고 예쁜 배경으로 존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한 진평왕과 닭에서 새, 오리로 사랑이 옮겨가는 비담, 여전히 말을 못타는 춘추 등에서 캐릭터 일관성은 쓸데없는 곳에서 지켜지고 있다.
다른 캐릭터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젊고 아름다운 화랑들은 나오지 않는다. 비밀 결사조직의 수장이자 나라를 잃은 왕자는 기껏 합류해서 아름다운 배경으로 쓰인다. 한국 역사 중 손꼽히는 지략가인 김유신은 한 마리 곰이 되어 어슬렁거리고 있다. 기록에서는 소도 때려잡는다는 알천의 대사는 “네, 공주님”밖에 없다. 덕만 공주 휘하의 남자들은 잘생겼지만 하는 일은 없고 거의 없다싶은 대사는 비슷하다. “네, 공주님” 덕만 공주의 대사도 비슷하다. “아니에요”
사람을 얻어 덕의 정치를 하는 인물이 유능하게 보이려는 것은 좋지만 자기 수하들한테 매번 ‘아니에요’라며 수하들을 부정하고 ‘인재를 얻어야합니다’라고 하지만 하는 행동은 자기 수하들한테 더 가차 없다. 오직 혼자 빛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주인공에게 누가 끌릴까? 차라리 나쁜 짓 저질러놓고는 자기 잘못을 합리화하지 않는 미실이 더 매력적이다.
미실의 캐릭터도 극과 극을 달린다. 그녀의 업적이 뭘까. 귀족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세력을 키워서 자신이 황후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한 것 이외에 백성을 위해서 무엇을 했기에 진정한 보수에 진짜 왕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미실은 처음부터 그런 고도의 정치적 이상이나 신념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었다. 미실의 욕망은 매우 단순했다. 오로지 황후가 되고 싶은 일념 밖에 없었다. 비인간적일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절대악스러운 캐릭터가 어느 순간 갑자기 대자모신이 되었다. 고현정이 그것을 매우 설득력 있게 연기했을 뿐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각본에 있지 않다. 원작이 ‘미실’이었고 그것을 토대로 나온 드라마다. 그러니 드라마도 ‘미실’이어야 했다. 제목은 ‘선덕여왕’이지만 미실은 안티테제가 아닌 테제이고 심지어 주인공인 덕만 공주가 롤모델로 삼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선덕여왕이 미실의 카리스마와 여장부적인 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소모됐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천명 혹은 운명을 타고난 자와 운명을 개척하는 자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천명은 항상 주인공 정의로운 자에게 내려졌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드라마가 매력적인 지점은 그 운명과 천명을 받지 못한 자가 노력하고 승리하가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가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지점이다. 바로 그녀가 천명에조차 거스르며 "보세요, 다 이 미실의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며 시작하는 그 장면이 매혹적인 것처럼.
만화 ‘리니지’에서 반왕 ‘켄 라우헬은 말한다.
“내가 이 나라에 조금만 더 애정이 없었다면 이 나라 따위 어떻게 되건 상관없었다면 너를 길동무로 할 수도 있다. 이 나라를 철저히 짓밟고자 했다면 지금 이긴 쪽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네게 진 것이 아니라 난 이 나라에 굴복한 것이다. 나의 왕국에게.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러니 나는 왕으로서 죽는다. 그것이 나의 명예다.”
천한 노예로 태어난 그는 왕으로서 죽었다.
성골이 아니었던 미실은 신국을 연모했고 왕으로 죽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단 하나 가지지 못했던 미실이 주인공이었던 대하사극 ‘미실’이 종영했다. 고현정은 미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인간인 우리는 그녀의 과거를 투영할 수밖에 없다. 그녀이 떠나고 없는 후 미니시리즈 ‘비담의 난’이 방영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