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단비뉴스 편집실
비커밍 제인(Becoming Jane, 2007)
- 최새론
- 조회 : 9930
- 등록일 : 2009-10-26
비커밍 제인(Becoming Jane, 2007)
-사랑없는 현실을 택할 것인가, 현실이 결여된 사랑을 갈구할 것인가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스빌리티", "브리짓 존스의 일기", "작은 아씨들"
여기 같은 줄기로 엮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모두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이란 공통분모를 가집니다. 관객은 뻔한 기대감을 갖고서 극장에 들어서고, 작가는 그 예상보다 더욱 뻔한 결말로 관객을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관객은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영화 "비커밍 제인"은 "오만과 편견"등을 쓴 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을 주인공으로 불러냅니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생동감 넘치는 몇 가지 캐릭터가 있는데요, 재기발랄하고 현명하지만 가난과 사회적 편견에 구속받는 여성, 그녀의 무지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가족들, 아름다움을 지닌 자매들,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알고보면 누구보다 높은 지적 수준과 자긍심을 가진 남자 주인공 등입니다.
"비커밍 제인"에서 주인공이자 작가인 제인은 그녀가 창조해 낸 여주인공들만큼 발랄하지도, 기백이 넘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작가가 되겠다는 뜨거운 꿈과, 가족과 친구를 아끼는 따뜻한 마음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죠.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비판하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한없이 솔직하고 당당한 이 남자, 제인을 약올리는 듯 하면서도 있는 모습 그대로의 제인에게 호감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자석처럼 끌리는 둘의 심리를 섬세하게 짚어갑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단순히 러브스토리를 전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소설을 통해 뽐냈던 남과 여의 심리 묘사 뿐 아니라 연인을 둘러싼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여성 혼자서는 독립할 수 없었던 당대의 현실 그리고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어하면서도 불안해하는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 유능하지만 가난과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 분).
결국 제인은 그들의 사랑을 말할 때 늘 입에 올렸던 "Let me decide that." (그건 내가 결정할게요) 라는 말 그대로 사랑의 완성 앞에서도 감정이 아닌 현실을 앞세웁니다. 그녀는 현실을 결여한 사랑보다는 사랑 없는 현실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선택은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대방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를 떠나 보내고, 유명한 여류 작가로 성장한 제인은 평생을 독신으로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년의 톰과 톰의 귀여운 딸을 만나게 된 제인, 그 소녀의 이름이 "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가슴 잔잔한 감동을 느낍니다. 함께 있지 않고서도 함께 있는 것 이상의 사랑을 평생에 걸쳐 완성해 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쓸쓸함과 함께 가슴 저린 하나의 감정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만의 "사랑"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이겠지요.
하나의 인격이 다른 하나의 인격을 만나 서로의 힘으로 자신을 완성해 가는 것, 그것만큼 숭고한 사랑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인지라, 내 인격은 제쳐두고서 상대방만을 바라보지 않을 수도 없게 되지요. 그래서 사랑은 시작이 아닌 완성이 어려운가 봅니다. 흔들리는 현실에서 사랑 한 조각 그리워하는 분들은 이 가을, 각자 "제인"과 "톰"이 되어보세요. 힘든 세상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빛을 발하는 법이랍니다.
- 이전아버지와 마리와 나
- 다음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