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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그들이 추석을 보내는 법-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의 추석 풍경
- 박소희
- 조회 : 9547
- 등록일 : 2009-10-21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던 추석(3일) 오후 경기 안산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 거리. 나무로 된 낡은 탁자 위에 있는, 눈높이 쯤 오는 칸막이가 어설프게 공간을 나눈다. 너비 1m도 채 안 되는 각자의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통화 중이다. 중국어, 방글라데시어, 스리랑카어 등 갖가지 언어들이 뒤섞인 이곳은 국제 통화를 할 수 있는 전화방이다. 올 5월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에는 이 같은 전화방이 흔하다. 주민 중 외국인 비율이 20%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한 가운데 위치한 ‘만남의 광장’에 쪼그려 앉아 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피안(25세, 원곡동) 역시 그 중 하나다. 그의 고향 인도네시아에는 ‘이둘 피트리(Idul Fitri)’라는 명절이 있다. 이슬람력으로 새해 첫 날인 이 날이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가족끼리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를 즐긴다. “이둘 피트리, (추석과) 비슷하다”고 웃으며 말하던 피안은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이내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 온지 겨우 넉 달째, 아직 한국말이 서툰 그이지만 마지막 한 마디는 또박또박 했다. “엄마 많이많이 보고 싶어요.” 한편, 근처 외국인이주민센터는 추석을 함께 보내려고 모인 인도네시아 사람들로 북적댔다. 캠코더로 열심히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던 아민(35세, 경기 시흥시 정왕동)은 “내일 한국인 목사님이 하는 이슬람 예배가 크게 열린다”며 “시간 나면 들려 달라”고 했다. 낯선 타국의 명절을 맞은 그들은 큰 소리로 모국어 노래를 부르고,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다. 오늘도 일하러 간다는 인디가(30세)는 “추석은 잘 모르지만, 모처럼 늦게 출근하는 덕분에 아들(3세) 줄 장난감 로봇을 살 시간이 됐다”며 수줍게 웃었다. 옆에 멀뚱히 서 있던 나딧과 구마라는 고향 스리랑카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 명절은 ‘뉴이어(설날, 4월 12일~14일)’만 있고, 이때엔 ‘카리밧(우유밥)’을 먹는다”며 대화에 열을 올렸다. 이날 전화방 대부분은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볐다. 낮은 칸막이는 거리의 소음, 또 옆 자리의 통화음을 막기엔 별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통화를 하기 위해 한 쪽 귀를 막고,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하지만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크게 웃고, 때론 젖은 눈가를 훔치던 그들은 쉽게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