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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디스트릭트9을 보고-스포일러 다량 함유
- 유정화
- 조회 : 9616
- 등록일 : 2009-10-19
오늘 저녁 제천 TTC에서 페릿양과 함께 <디스트릭트9>를 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스포일러가 다량 있으니 스크롤은 알아서!^-^
물론, <마더>처럼 알고 봐도 재미있는 영화이긴 합니다!ㅎ
<반지의 제왕>의 감독 피터 잭슨이 제작에 참여해 화제가 됐던 <디스트릭트9>은 ‘외계인과 우주선, 착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SF 영화’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뻔한 스토리가 아니다. 개봉 첫 주 주말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말한 것처럼 다분히 정치성을 띤 영화다.
<디스트릭트9>의 초반부는 용산참사를 연상시킨다. 불시착한 우주선이 몇 일째 남아메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떠 있자 외계인 관리국 MNU가 우주선을 뚫고 들어가 외계인들을 끌어내는 장면이나, 디스트릭트9 지역에 격리수용된 외계인들을 또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강제로 서명시키는 장면이 그렇다. 영화 전체에서 외계인은 일체의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쓰레기 더미에서 먹이를 주워먹고, 이유없이 적대적인 MNU직원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위력적인 외계인 무기가 있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고양이 먹이를 사는 데 쓴다. 극 중 외계인이 분노한 것은 단 두 번, MNU가 자신들 종족을 생체실험에 이용한 흔적을 발견했을 때와 외계인으로 변한 주인공을 쏴 죽이려는 MNU직원을 발견했을 때다. 직접적으로 자신들을 해칠 때만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MNU는 끊임없이 외계인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든다.
문제는 주인공 비커스가 정체불명의 액체에 노출되어 외계인으로 변해가면서 시작된다. MNU의 어리숙한 직원으로 무시받던 비커스는, 외계인에게만 반응하는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되자 MNU에 이용당한다. 이 지점부터 관객은 인간과 MNU보다는 외계인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비커스는 MNU의 외계인 이주사업단장으로서 외계인의 알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외계인으로 변해가자 살아있는 ‘프런(외계인을 낮추어 부르는 말)’을 죽이지 못한다. 초반부에 더럽고 불쾌한 존재로만 여겨졌던 외계인은 “어느 순간 ‘내’가 될 수도 있는” 타자이자 사회적 약자가 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외계인을 괴롭히는 정부기관 MNU와 갱단들의 행태가 똑같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외계인 무기를 사용해 약자를 지배하는데 혈안이 된 이 두 집단은, 탐욕스런 지배집단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영화에 나타난 차별양상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영화자체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미국의 반인권적 정책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중간중간 뉴스형식의 화면이 삽입되는 다큐멘터리 형식은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실존인물처럼 인터뷰하고 카메라 맨과 대화하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주인공은 불리한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며 편집해달라고 한다. 디스트릭트9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시민들이 우주선이 떠나는 것을 보며 신기하다고 환호하는 모습은, 매스컴에 의해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강한 메시지다.
우주선은 왜 워싱턴도, 뉴욕도 아닌 요하네스버그에 멈춰섰을까. 영화 초반에 던져진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미국 상공에 우주선이 떴고 같은 내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이 영화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고발하는 평이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계인을 불쾌해하고 외계인을 몰아내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이다. 이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중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인에게는 약자인 흑인이 외계인에게는 강자다. 인종, 성별, 출신지역, 장애여부, 성적취향 등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조건들이 상황에 따라 강자와 약자의 위치를 결정한다. 타자에 대한 연대의식 혹은 진정한 공감이 없다면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에겐가는 피해감을 주고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도 어느날 멀쩡한 시민이 하루아침에 도심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용산참사 유족들이 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완전한 외계인으로 변하면서 끝난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쓰레기로 꽃을 만들어 준다. 아내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꽃을 보며 눈물짓지만 ‘이 꽃은 남편이 준 것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는다. 그래서 이 외계인 영화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