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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내가 뽑은 기획기사 / 서영지] 나는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였다.
- 서영지
- 조회 : 9836
- 등록일 : 2009-09-23
나는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였다
한겨레21 [2009.09.18 제778호]
<!--소제목 있을경우 여기부터-->
종일 12시간 서서 일하면 떼어내고 싶어지는 몸과 머리…
감시 속에 말조차 잃은 단절의 작업장에서 보낸 한달
여름 한철,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값싼 ‘을’이었다.
1970~80년대 공장 노동이 ‘여공’과 ‘미싱’으로 상징된다면, 지금은 전동 드라이버다. 계절 따라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공장 시계 돌아가는 소리는 아니 들리고, 일주일에 7일, 하루 12시간씩 나사 돌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곡절 끝에 취업한 A사, 대부분의 여공 손에도 드라이버가 쥐어져 있다.
날 알선해준 ‘갑’(ㄷ용역회사)의 ㅇ과장은 “한 달에 140만원 플러스 알파, 그래서 170만원까지 받아간다”고 설명하며 액수를 메모까지 해줬다. 지난 8월11일 아침 7시30분께 서명한 계약서 뒷면에 그가 볼펜으로 끼적인 ‘희망’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 희망이 얼마나 고되며, 또한 야망에 가까운지 깨닫기까진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아침 8시30분 종소리와 함께 라인에 서다
난 계약서를 쓰자마자 A사로 ‘배달’됐다. 함께 ‘을’이 되어 공장에 온 무리는 다른 인력회사에서 온 이들을 포함해 19명이었다. 이들은 통상 ‘용역’으로 불린다. 인력회사 관리들이 줄을 세웠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자 A사 생산부장이 와 사열해 있는 우리를 뭉텅뭉텅 갈랐다. A사는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다. 석유난로·냉장고·비데 등 여러 가전제품을 컨베이어벨트 따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탄탄한 중소기업이다. 나는 다른 6명과 함께 ‘라인 55R’에 배치됐다. 이 회사의 주력사업인 중소형 석유난로 제작 라인이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740.html